설립이념
바람직한 사회적응인 육성은 물론 인류행복과 복리증진에 기여하는 세계인 양성의 요람으로 만든다.
설립취지
광복 후 6·25를 겪으며 굶주리고 헐벗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재화를 제공하기보다 꿈과 희망을 싹틔워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자립, 재활의 장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뜻이 있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으로서 할 수없는 것을 보완하기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잘 할 수 있는, 즉 청각과 촉각 등의 감각을 활용하여 개인의 능력과 소질을 개발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를 통해 세계의 일꾼으로 나아가 사랑을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했다.
시각장애인은 무능력자가 아닌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임을 인지하고 밝고 맑은 심성으로 성실하게 노력하여 활기찬 내일을 열어가는 재활의 의지를 키우고자 학교와 생활시설을 설립했다.
법인목적
미래 사회에 자립할 수 있는 유능한 시각장애 인재 육성의 기반조성과 더불어 광주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의 장 마련하고자 한다.
추진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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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16개시도 12개교 시각장애 특수학교 중 유일하게 호남권만 제외하고 타 지역은 이미 전공과 및 학교기업형 직업훈련실이 설치·운영되고 있어 호남의 중심인 광주에 평생 교육복지센터 건립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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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극복하고 미래사회에 자립할 수 있는 직업·진로지도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열약한 교육환경 기반 빛 바우처 시스템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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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덕흥근린공원과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이 조성될 영산강 둔치에 근접한 최적의 지리적 여건으로 지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장이 요구된다.
설립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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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선생
- 설립자이신 금정 김택만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 유탄에 실명한 후 당시 서울재생원을 졸업하셨다. 귀향한 후 한국동란 후에도 존재해 있던 광주공원 안의 일제신사가 있던 자리를 허물고 천막교실을 열어 시각장애학생들을 불러 모아 교육을 시작하셨으니 이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장애학생 또한 건전한 국가관을 지닌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교육관의 발로였다.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 교수, 학습 방법, 교재 등이 전무한 상태에서 특수교육 관련자 및 선진적인 타 기관의 교육 관련자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시고 교육과 관련된 모든 교재와 자료를 구입하여 참조하시면서 학교 교육의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온갖 열정을 바치셨다. 또한 교육보다는 전쟁고아들을 수용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회적 당면과제였으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이 자립할 수 있는 직업적 기술을 몸소 가르치셨으니 이는 오늘날 시각장애특수학교 직업교육의 선구가 되었다.
1960년대 들어서 장애학생 교육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정한 경제적 자격을 갖춘 재단법인을 만들도록 함에 따라 사재를 법인에 기부하시어 전남 영광원을 독립된 재단으로 인가받게 되고 비로소 정식학교로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 안의 협소한 건물에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여 학교를 이전하게 되었는데, 그 일은 공원 안의 건물을 뜯어 옮겨서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으니 그야말로 모든 (교)직원이 손과 발로 뛰며 무더운 여름철에 땀과 비로 범벅이 되면서 완공하였다. 당시 모든 (교)직원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호남지역 장애자교육의 선구자가 된다는 일념으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했으니 그러한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그 같은 일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 설립자께서는 학교와 생활시설을 정상화 시키는 작업에 매진하여 작고하실 때까지 시각장애학생 교육과 복지에 온 생애를 바치셨습니다.